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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하도, 낙서, 삼황오제에 대한 잡담 잡담

천부경 - 환인이 환웅에게 내렸다는 81글자. 라고 환빠들과 증산계열 환빠들이 주장한다. 
          몇천년을 건너 뛰어 1916년에서야 묘향산 석벽에서 발견되었다고는 하나 묘향산 
          석벽에 새겨진 원본을 본 사람은 없음.

하도   - 삼황 중의 한명이 복희씨가 연구했다는 문서. 
          황하에서 솟아오른 말 등짝에 그려진 그림.

낙서   - 요순우탕의 우왕이 발견한 문서. 낙수에서 발견한 거북이 등짝에 그려진 그림.
           주나라를 세운 문왕이 후천팔궤로 정리했다.

하도와 낙서가 선천팔궤, 후천팔궤가 되며 이것이 합쳐지면서 발전된 것이 바로 주역64궤. 유학의 시조라고 불리는 공자와 그 유학의 3대경전이라 불리는 시경, 서경, 역경 중의 하나. 따지고 보면 역경(주역)은 고대 점술서이며 점차 우주만물의 이치를 따지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상나라(=은나라)의 갑골문은 거의 점을 치고 난 결과를 정리한 문자로 보고 있다. 갑골은 대개 거북이 등뼈와 소의 견갑골이다. 상나라를 무너뜨린 주나라도 상나라와 마찬가지로 갑골문이 출토된다. 

삼황과 오제는 고대 중국의 전설이다. 그런데 이 삼황 오제가 모든 자료에서 같은 인물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 역사상 삼황오제에 관한 설은 전국 시기에 이르러서야 나타나기 시작한다. 먼저 삼황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이 7종의 설이 있다.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 : 《사기(史記)》 〈보삼황본기(補三皇本紀)〉에 인용된 《하도(河圖)》, 《삼오력(三五曆)》
천황, 지황, 태황(泰皇) : 《사기》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복희(伏羲), 여와(女媧), 신농(神農) : 《풍속통의(風俗通義)》 〈황패편(皇覇篇)〉
복희, 신농, 공공(共工) : 《통감외기(通鑒外紀)》
복희, 신농, 축융(祝融) : 《백호통(白虎通)》
수인(燧人), 복희, 신농 : 《풍속통의》 〈황패편〉에 인용된 《예위(禮緯)》 〈함문가(含文嘉)〉
복희, 신농, 황제(黃帝) : 《십팔사략》, 《제왕세기(帝王世紀)》와 손씨주(孫氏注) 《세본(世本)》

즉 삼황은 여러가지 설이 있다. 초기의 삼황은 아예 이름도 없으며 후대에 이르러서야 복희가 등장하고 나머지 이황은 고정되지 않고 바뀐다. 주로 우리나라에서 환빠들이 주장하는 삼황은 맨 밑의 복희, 신농, 황제다. 왜 그럴까? 

다음 오제도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는데 왜 삼황에 속하는 인물들이 섞여 있을까? 
그것은 고대 중국에서 황과 제의 의미가 달랐기 때문이다. 

한나라 시대에 황제의 아버지로서 명목상의 존칭을 받을 때는 태상황이라고 불렀지 '제'를 붙이지 않았다. 한서의 안사고 주석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천자의 부친이므로 '황'이라고 한다.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므로 '제'라고 하지 않는다." 또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있을 때는 태상황제라고 불렸다. 

이처럼 황과 제 양자가 거의 동격이기는 하나 실제로 '황'은 수식어에 가깝고, '제' 쪽에 더 실질적인 권한의 의미가 부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황은 권위는 있지만 추상적으로 위대한 존재라는 개념이며, 제는 실질적인 통치자로서의 개념이 강했던 것이다.

 고로 삼황은 위대한 존재의 삼황이며 오제는 통치자로서의 개념으로 인식한다면 오제쪽이 그나마 역사시대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으며 오제에 삼황이 속하는 이유는 오제가 삼황보다 나중에 나온 개념으로 삼황시대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보는 것이 옳다.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당요(唐堯), 우순(虞舜) : 《황왕대기(皇王大紀)》
황제(黃帝), 전욱(顓頊), 제곡(帝嚳), 당요(唐堯), 우순(虞舜) : 《세본(世本)》, 《대대례(大戴禮)》, 《사기》 〈오제본기〉
태고(太皋: 복희), 염제(炎帝: 신농), 황제(黃帝), 소고(少皋), 전욱(顓頊) : 《예기(禮記)》 〈월령(月令)〉
황제(黃帝), 소고(少皋), 제곡(帝嚳), 제지(帝摯), 제요(帝堯) : 《도장(道藏)》 〈동신부(同紳部)·보록류(譜錄類)·곤원성기(混元聖記)〉에 인용된 양무제(梁武帝)의 말
소호(少昊), 전욱(顓頊), 고신(高辛), 당요(唐堯), 우순(虞舜) : 《상서서(尙書序)》, 《제왕세기》, 《십팔사략》


다시 삼황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환빠와 증산도 일파들이 설명하는 복희씨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그들은 태호 복희라고 주로 불리는 복희씨에다 그 여동생인 여와를 합치고 불을 발견했다는 수인씨의 이야기도 섞고, 집과 건물을 발견했다는 유소씨의 이야기도 섞어 버린다. 그럼 복희씨를 말하면 여와+수인+유소가 되버린다. 복희만 설명하면 다 된다. 거기다 복희씨의 성은 풍風씨이다. 이 복희씨의 이야기를 설명하다 은근 슬쩍 강姜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증산도의 시조 강증산과 연결된다.

이 부분을 읽어보면 기가 찰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삼황에 속하는 인물을 제외하고 보면 오제는 황제의 다섯 후손을 말하고 있다. 소호(少昊), 전욱(顓頊), 고신(高辛), 당요(唐堯), 우순(虞舜)을 말하게 된다. 황제의 후손 중에 뛰어난 인물들을 꼽아 오제라고 하는 것으로 태정태세문단세로 오해하면 안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복희, 신농, 황제의 삼황과 오제는 그 근거가 십팔사략과 제왕운기이다. 십팔사략은 줄여서 사략이라고 부르는데 이 책은 조선시대 아이들의 기초 교보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즉 천자문 - 십팔사략 - 소학 순으로 교육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 십팔사략은 원나라 시대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조선 태종 시기에 처음 들어온 것을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과 성격은 주로 역사속의 유명한 이야기를 뽑아 모은 것으로 마치 어린아이를 위한  <역사 이야기> 수준의 교육서로 초반 도입부부터 사마천이 《사기》를 지으면서 허황된 이야기라며 빼버린 삼황에서 시작된다. 

아울러 청나라 때에는 이 십팔사략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다고 한다고 한다. 즉 조선시대의 우리 선조가 즐겨 배운 중국 고대 역사는 이미 중국에서 폐기해버린 어린아이를 위한 역사동화책 자료인 것이다. 그리고 환빠들과 증산계열 환빠들은 역사 동화책을 가지고 근거로 삼아 열심히 믿는 사람들이 되버린다.

ps1 > 환빠 중에서 독한 사람들은 아예 치우와 싸운 황제마저도 동이족으로 만들어 버린다. 순임금이 동이족이라는 이야기를 근거로 <어 순임금이 동이족이면 당연히 황제도 동이족이지!> 라는 논리다. 어 황제도 동이족이면 치우도 동이족이고 그럼 내전일세?

ps2 > ps1을 믿는다면 어차피 중국인들도 방계 동이족. 동북공정은 본가인 동이족과 방계 동이족인 화족과의 조상싸움이 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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